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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x ) 그냥... 은인이 돌아가셨습니다. (장문)

42 트러블2게시물검색 코멘트검색 전체게시물 잡담고민 177 200148 945 2022.03.02 14:03
어려운 형편에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17살의 나이에 중소 유통 기업의 물류 센터에서 시설/설비 입,반출을 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대차가 넘어지면서 발이 깔려 뼈가 부러지는 사고가 났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저는 제 돈으로 치료를 받았고, 일도 그만두게 됐습니다. 바보처럼.

IMF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마당에 호수가 있는 단독주택에서 사시던 어머니는
아들을 키우기 위해 김밥집과 공장, 옷떼기를 전전하며 돈을 버셨습니다.
제 강경한 태도에 자퇴는 허락 하였으나 공장은 절대 안된다고 말씀하셨던 어머니,
유통회사에서 천천히 배워 나가겠다 설득해 들어갔던 직장이었습니다.

치료비를 받았다고. 일은 내가 또 다칠까 싶어 그만두어야 겠다고. 거짓말 했습니다.
집에선 소리치면서 직장에선 산재처리에 대한 말도 못 꺼내는 나의 유약함은
스스로를 베어 상처를 내곤 했습니다. 그 흉물스러운것을 어머니께 보여드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어머니를 지킬 유일한 남자였습니다.

다친 발을 끌고 할 수 있을 만한 일을 찾아 다녔습니다. 다친 미성년자를  써줄 직장은 없었습니다.
교차로와 벼룩시장 신문을 뚫어질듯 봤습니다.

"앉아서 할 수 있는 일, 커피 원두 분류 시급 4천원"

발견하자 마자 전화를 걸어 사정했습니다. 시급 3천원만 주셔도 좋으니 써달라고.
일단 면접을 보러 오라는 말을 듣고 커피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커피라고는 맥심밖에 마셔본 적 없는 제가 에티오피아라는 나라를 처음 알게된 날이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대중적으로 자리잡지 못했던 로스팅 하우스였습니다.
카페를 겸하지는 않았고, 오롯이 커피를 볶아 납품하는 공장식이었습니다.

"3천원은 너무 양심이 없고, 처음엔 3500원을 줄거다.
보통 만큼 일을 하면 4천원을, 잘하면 잘하는 만큼 더 줄게."

내 사연을 안타깝게 들어준 사장님은 일을 주었습니다.
어린놈이 일하겠다고 업무 관련 공부를 해온것을 기특해 하는것도 같았습니다.
제가 받은 일은 수입된 커피 생두를 펼쳐놓고
상하거나, 깨지거나, 벌레먹은 콩을 골라내는 일이었습니다.
다친 발로 20kg짜리 포대를 들고 나르는 일은 힘들었지만, 일할 수 있는것이 그저 좋았습니다.
발이 다 나아갈쯤에는 4500원의 시급을 받았습니다. 포대를 쏟아 부을 때 나는 냄새만으로 원산지를 구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조금은 한가로웠던 그 날에, 사장님이 나를 불렀습니다.
"가끔은 좀 쉬어." 라고 하며 에어컨을 틀어 주고 담배를 건네더니
"너 점심먹고 몰래 피우는거 봤으니까 앞으로 그냥 피워, 담배 참으면서 어떻게 일하냐?"
미성년자였던 저는 항상 숨어서 담배를 피웠었는데, 또 그걸 보신 모양이었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담배를 받아 들고 어찌할 줄 몰라 가만히 있었는데, 손에 있는
담배를 낚아 채가시더니 제 입에 물려주시고 불을 붙여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얼음을 탄 아메리카노를 내주셨습니다.

"저 처음 마셔봐요."

"응?"

"저 저희 회사 커피, 아니. 블랙커피를 처음 마셔봅니다. 오늘."

사장님은 뒤집어질듯 웃었습니다. 여태 안마셔보고 뭘 했냐고.
너무 고급품 같아서 손댈 엄두가 안났다는 제게
마음껏 마시라고, 마음에 들면 집에도 가져가라고.
갖다 팔지만 않으면 1키로든 100키로든 원하는대로 하라던 사장님.

그 커피를 처음 맛보고 '말린 감맛이 나요' 하니 눈을 번쩍이던 사장님.
재능이 있으니 여기서 실력을 키워 스무살이 되면 꼭 서울로 가라던 사장님.
여름에는 펜션을, 겨울에는 바다 앞 민박집을 빌려
어머니와 나를 태워주고 본인은 집에 돌아갔다가 다시 태우러오던 사장님.
별거 아니라고 맛있게 먹으라던 아이스박스에 소고기를 채워주셨던 사장님.
18살 생일 부터는 추출을, 19살 생일 부터는 로스팅을 알려주시던 사장님.
업무시간에 커피를 마시고 놀고있어도 공부하냐며 칭찬을 해주던 사장님.

성인이되어 서울에 갈 때. 고생했다고, 서울 살이 보증금 하라며 퇴직금에 500만원을 더 넣어주신 사장님.
큰 돈은 빳빳해야한다고, 그 돈마저 새돈으로 준비해준 우리 사장님.
그 사장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오늘 발인했네요.
빳빳한 새돈으로 500만원 부조했습니다. 가는길에 다 쓰고 가시길 바라면서요.

코로나때문에 커피 일을 그만두고 형틀 목수질을 하고 있지만 항상 그립습니다.
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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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Comments
43 지러지러우게시물검색 코멘트검색 전체게시물 2022.03.04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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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누군가에게는 이렇게 기억될만한 사람이 되고싶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0
31 핑크좌지게시물검색 코멘트검색 전체게시물 2022.03.04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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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너무 슬프네요
0
35 안사랑게시물검색 코멘트검색 전체게시물 2022.03.04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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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눈물나도록 멋진 분을 만나셨네요.
꼭 성공하셔서 그만큼 멋진 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0
2 fusuwh게시물검색 코멘트검색 전체게시물 2022.03.04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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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내셔요 저도 그기분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느정도 이해합니다 힘내세요
0
60 그녀의암눼게시물검색 코멘트검색 전체게시물 2022.03.04 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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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힘내세요
0
31 Ramonas게시물검색 코멘트검색 전체게시물 2022.03.04 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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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은 귀인을 만나셨네요 ㅠㅠ 왜 저런 좋은 분들은 일찍 하늘로 떠나가시고 최악의 범죄자들은 오래오래 살까요…..
0
39 박솔찬게시물검색 코멘트검색 전체게시물 2022.03.04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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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야씨 포럼글에 추천 눌러봅니다. 저에게도 그런사람이 있다면 눈물이 정말 멈추지 않을 것 같네요.. 제 댓글을 보실진 모르시겠지만 힘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사장님의 은인이신분과 같은 삶이 되고 싶네요..
0
56 ttman게시물검색 코멘트검색 전체게시물 2022.03.04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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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처음으로 남깁니다.

글 읽어 내려가면서
글쓴이의 마음이 느껴져 눈물이 날려고 하네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0
25 이성준게시물검색 코멘트검색 전체게시물 2022.03.04 06:22  
신고
사람이 싫고 사람에 시달리며 살아가며 마음에 자물쇠를 걸고 지내지만 저런 분들 덕에 희망이 있음을 느끼네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 입니다. 사장님의 명복을 빕니다.
0
58 가슴조아게시물검색 코멘트검색 전체게시물 2022.03.04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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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들어도 짠하네요. 정말 좋으신분이었다는게 느껴지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Congratulation! You win the 90 Lucky Point!

0
51 서해번쩍동해번쩍게시물검색 코멘트검색 전체게시물 2022.03.04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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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살면서 좋은 사람 만나기 쉽지 않은데 아마도 인생의 한줄기 희망과도 같으셨던 분께서 돌아가셨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0
39 남하얀게시물검색 코멘트검색 전체게시물 2022.03.04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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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작가님 아니시죠?
실화라고 믿기지 않을만큼 감동적이네요..
두 분 다 좋으신분들이라 만나게되지않았을까 싶습니다
0
32 ashasfh게시물검색 코멘트검색 전체게시물 2022.03.04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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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의 인연을 들려주신 것만으로도 세상에 이로운 일을 하시고 계신 거 같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0
39 시니게시물검색 코멘트검색 전체게시물 2022.03.04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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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도 글쓴이 분도 정말 멋지고 인간냄새가 찐하게 나는 분들이네요. 잠시지만 가득한켠이 따뜻했습니다.
0
43 매덕스게시물검색 코멘트검색 전체게시물 2022.03.04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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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다가 눈물을 쏟을 뻔했네요~ 살기 팍팍한 요즘 가끔은 이런 글들 읽으면 그래도 세상 참 살만하다라는 생각 듭니다... 좋은 곳에서 편히 쉬실 껍니다... 소중한 인연 글로 풀어주셔서 고맙습니다~
0
34 키리캣게시물검색 코멘트검색 전체게시물 2022.03.04 10:53  
신고
ㅠㅠㅠㅠㅠㅠㅠ 눈물 나네요
사장님께서 영면하시길 기도할게요
작성자님도 남은 인생 행복하세요
0
38 mbti2sfp게시물검색 코멘트검색 전체게시물 2022.03.04 11:03  
신고
넘 슬퍼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
0
30 Hjon게시물검색 코멘트검색 전체게시물 2022.03.04 11:04  
신고
트러블님이 좋은 사람이기에 그런 귀인을 만나셨던 것 같습니다. 인연이라는게 정말 무시하지 못할 힘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기분이 뭔지 차마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따뜻하고 먹먹한 느낌이 밀려옵니다. 마음 잘 추스르시기 바랍니다^^
0
41 느비토우게시물검색 코멘트검색 전체게시물 2022.03.04 11:11  
신고
좋은 사람이셨네요 참. 앞으로 항상 생각하며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포럼에 글 보고 조용히 창 닫고 갑니다.
좋은 곳 가셨을거에요 많이 울고 감정 추스리시고 더 멋지고 귀한 삶 응원하겠습니다
3
29 타이어마스터2게시물검색 코멘트검색 전체게시물 2022.03.04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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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곳으로 가셨을거에요 화이팅입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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